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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가 기준이다

기사입력 2019.10.30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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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는 옥사(獄事)를 판결함에 있어서 죄인의 진상을 파악하고 슬퍼하였는데, 오늘날에는 옥사를 판결할 때 죄인의 진상을 파악하며 기뻐한다. 슬퍼함은 교화가 행해지지 못함을 슬퍼함이요, 기뻐하는 것은 필시 상이 내릴 것으로 알고 기뻐하는 것이다.”라는 중국 당나라 때의 피일휴(皮日休)란 사람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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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승현 작가

     

    다산은 이 말을 인용하면서 말합니다.

    “중국의 법에는 옥사를 판결함에 있어서 실정을 파악한 경우 반드시 논공행상이 있다. 이거야 관인들에게 권면하는 조치이지만 폐단이 또한 이와 같다.”라며 악한 죄인들의 범행을 제대로 확인함에 있어 국가의 교육정책이나 풍속의 야박함에서 그런 죄인이 나옴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달을 위해 죄인의 진상을 밝힌 것을 기뻐한다는 관인들을 비난했습니다.

    자신의 출세욕 때문에 험악한 수사와 재판을 하는 경우를 다산은 경계했던 것입니다.

    “관인(官人)은 환하게 꼬치꼬치 따짐으로써 명성을 얻고자 하여 털을 헤집고 흉터를 들춰내듯 법령을 엄밀히 적용하고 교묘하게 옭아 넣어서 필시 판결을 뒤집지 못하도록 하려 든다. 이에 대해 오직 제 몸을 닦고 깨끗이 하려고 힘쓰는 선비란 자들은 또한 피고인의 무고함을 분명히 알면서도 구설수를 멀리하여 스스로 피하는 수가 많다. 이는 약자들의 생명에 관계되는 일을 외면함으로써 자신만 깨끗한 이름을 보전하려는 처사이다.”라는 정선(鄭瑄)의 말을 인용해 수사와 재판에서 자신의 명예만 지키느라 진실을 외면함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수사와 재판의 문제로 요즘처럼 시끄러운 때는 많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죄를 밝혀내기 위한 수사가 이렇게 세상을 흔들고 있던 예도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검찰과 법원이 명확히 나뉘어 수사는 수사대로 재판은 재판대로 행해지지만, 조선시대에는 그런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수사와 재판을 동시에 같은 벼슬아치들이 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다산의 『목민심서』 형전(刑典)의 단옥(斷獄) 조항 또한 수사하고 재판하는 일을 함께 이야기하였습니다.

    자신이 상 받기를 원하고, 수사능력이나 재판능력만 인정받을 욕심으로 반드시 형벌을 내리겠다는 목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꼬치꼬치 살피고, 남의 명예와 인격을 말살해서라도 수사관이나 재판관 자신들의 명성을 얻고 이익과 명예만 유지하겠다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다산의 ‘단옥’에 대한 지혜였습니다.

    이러한 다산의 뜻이 오늘에 더욱 그립기만 합니다.

    또한 그것이 기소독점주의를 쥐고 있는 검사에게나, 판사소신주의라면서 멋대로의 소신을 발휘하는 판사에게나 국민들이 원하고 있는 것은 다산의 지혜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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