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칠면조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매일 오전9시만 되면 주인이 맛있는 식사를 차려준다.
이제껏 주인은 한 번도 그 칠면조의 식사를 거른 일이 없었다.
눈이 오는 날이나 비가 오는 날이나 항상 식사는 오전9시면 어김없이 나온다.
정말로 고마운 주인이 아닐 수 없다.
칠면조는 점점 살이 찌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오전 9시에 주인의 행동은 평소와 완전히 달랐다.
맛있는 식사 대신에 칼을 들고 왔다.
추수감사절 오전9시에 그 칠면조는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오늘 오전 9시까지 예외 없이 식사가 나왔다는 사실이 내일도 식사가 9시에 나올 것이라는 근거가 절대 될 수 없다.
칠면조는 어리석게도 영원히 식사가 아무런 대가 없이 공짜로 주어질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가졌다.
심지어 주인에게 고마워하면서까지.
중국에 돼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 돼지 등에 이 4마리가 올라탔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4마리는 돼지 피를 빨아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계속 여기저기 왔다 갔다만 하고 있다.
왜 그럴까.
서로 가장 좋은 식사 장소를 선점하려고 기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그런데 이 기 싸움이 장난이 아니다.
도대체 돼지 살 뜯어 먹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서로를 견제하기 바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한 마리가 추가로 도착한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얘들아, 너희들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우리가 올라타 있는 이 돼지가 이번 주인댁 제삿날 제사상에 오른다는 특급 정보가 있는 것 몰라. 까딱하다가는 국물도 없을 거야.”
이제 좋은 목이고 뭐고 간에 무조건 먹고 볼 일이다.
이제 이 5마리가 서로 경쟁적으로 돼지 살을 왕성하게 먹어 치운다.
돼지는 나날이 말라만 간다.
결국 주인은 그 삐쩍 말라비틀어진 그 돼지를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
다른 돼지가 대신 올라간다.
이도 좋고 돼지도 좋고 둘 다 윈윈한 것이다.
칠면조는 죽는 날까지 행복하게 잘 먹다가 갑자기 죽는다.
돼지는 죽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살이 빠지면서 죽음을 면한다.
돼지가 이번에는 운 좋게 죽음을 면했다.
하지만 다음번에도 그러리라는 법이 없다.
살아남으려면 미래를 예측하려고 하지 말라.
미래는 대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