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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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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과 왈츠

씨름과 왈츠

명절이 되면 거의 빠질 수 없는 경기종목 중에 씨름이 있다. 그런데 그 씨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요즘 사람들의 관계를 맺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차승현 작가 씨름에서 만나는 두 사람은 동지가 아니라 적이 된다. 서로의 힘과 기술을 겨루어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그 관계에서는 한 명이 이기면, 나머지 한 명은 반드시 지게 되어있다. 물론 많은 경기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구별되고 있기는 하다. 반면 왈츠는 다르다. 왈츠는 동행이다. 버티지 않고 함께 간다. 파트너가 앞으로 몇 걸음 나오면, 상대방은 그만큼 물러서서 균형을 이룬다. 왼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보조를 맞추고, 한 명이 화려한 동작을 구사할 때 나머지 한 명은 그가 쓰러지지 않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그렇게 하다 보면 두 사람은 아름다운 선율에 맞추어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해 나간다. 사람과의 관계 중에는 ‘씨름의 관계’를 맺는 이들이 있고, ‘왈츠의 관계’를 맺는 이가 있다. 누가 이기는가 보자 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 있고, 경쟁보다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는 사람이 있다. 씨름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은 말을 무기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려고 한다. 반대로 왈츠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말은 방향을 가리키는 도구가 된다. 사람들과 목적지를 향해 함께 걸어갈 때 필요한 도구인 것이다. 살면서 후배들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거나, 또는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거나, 대단한 업적을 쌓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만들어가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과 생각과 습관은 그 자체로 인하여 수많은 갈등을 만들어낸다. 이제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자연스러워져야 하고, 생각에 유연함을 담고, 과장 대신에 편안함 속에서 갈등이 풀어졌으면 좋겠다.

습관의 뿌리

습관의 뿌리

늦은 나이 어렵게 자식을 가진 아버지는 자식을 어떻게 길러야 할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고민하던 남자는 이름난 현자를 찾아가 자신의 걱정을 상담했습니다. 차승현 작가 "선생님 저도 나름 많이 배우고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왔다 생각했지만 막상 자식을 가져보니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좋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현명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현자는 웃으며 정원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가던 남자에게 현자는 세 그루의 나무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나무를 한 그루씩 차례대로 힘껏 뽑아보십시오." 남자는 갓 심어놓은 첫 번째 나무를 아주 쉽게 쑥 뽑았지만, 조금 뿌리를 내린 두 번째 나무를 뽑을 때는 안간힘을 써서 겨우 뽑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견고하게 뿌리를 내린 세 번째 나무는 아무리 힘을 줘도 뽑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 이번 나무는 뽑을 수 없습니다. 밑동을 잘라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현자가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자녀 교육은 이 나무 뽑기와 같습니다. 오랜 습관은 깊은 뿌리를 내려서 바꾸기 어렵고 밑동을 자른다고 해도 뿌리는 남아있습니다. 나쁜 습관은 뿌리가 깊게 내리기 전에 빨리 뽑아내줘야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서 회색 또는 청색 정장만 입었다고 합니다. 결정의 횟수를 최대한 줄이고자 음식이나 옷에 일일이 결정 에너지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일상생활은 일정한 틀을 유지해야 합니다. 작은 습관, 즉 루틴(routine)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논밭을 일구는 농부들에게 있어 힘든 일 중의 하나가 바로 논밭에서 자라는 잡초를 뽑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힘은 들지만, 잡초를 제거하고 나면 더 많고 좋은 품질의 수확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경자년에는 큰 꿈을 계획서에 그리기 전에 좋은 습관과 바른 행동을 먼저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우리 속담이지만 이 속담을 들을 때마다 안다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인지 믿는다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인지 애매모호할 때가 있다. 차승현 작가 아마도 사람 속은 모르니 믿지 말라는 의미가 더 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을 가끔 혼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그 구분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노력해서 아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요,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없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열 길 물속은 지식의 영역이고, 한 길 사람 속은 믿음의 영역이라는 것이 된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마음속을 알지 못하고, 너무나 잘 아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다 보면 사람을 잘못 만나서 사기를 당하거나 배신을 당하고, 사랑한다고 믿었던 연인에게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 상처에서 벗어나기까지 많은 아픔을 겪기도 한다. 그렇지만 믿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믿음이 없다면 공동체는 단 한 순간도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믿지 못하고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면 하늘이 무너질까 전전긍긍하는, 이른바 기우(杞憂)로 인하여 삶 자체가 엉망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믿는 사람을 어리석게 보고, 많이 아는 사람에게는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착해서 사람을 의심할 줄 몰라서 속아주면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어느 것이 더 가치가 있을까? 굳이 따진다면 믿지 않는 똑똑한 사람보다는 서로를 믿어주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만의 생각일까? 그렇지만 주변의 사람들을 얼마나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리석은 종달새

어리석은 종달새

어느 날 종달새 한 마리가 하늘 높이 날고 있었다. 정말 높은 곳에 올라 행복의 노래를 부르다 땅 아래를 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손수레에 벌레를 가득 싣고 가는 것이었다. 차승현 작가 흥미를 느낀 종달새가 가까이 가보니 손수레에는 ‘신선한 벌레를 팝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래서 종달새가 고양이에게 물었다. “하나에 얼마요?” “깃털 하나면 됩니다.” 종달새는 자기 깃털 하나를 뽑아주고 벌레 하나를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너무나 입안에 착 달라붙는 벌레 맛에 반한 종달새는 깃털 하나를 더 주고 벌레를 사먹었다. 그리고 내친 김에 깃털 몇 개쯤 없다고 나는데 지장은 없겠지라고 생각하여 벌레를 몇 마리 더 사먹었다. 잠시 후 이제 배가 부르다고 생각한 종달새는 쉬러 가려는 생각으로 날갯짓을 했다. 하지만 몇 개 남지 않은 날개는 종달새를 날지 못하게 했고, 그것을 지켜보던 고양이는 재빨리 뛰어와 어리석은 종달새를 단숨에 먹어치웠다. 사실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유혹이든, 아니면 고통이든... 그렇지만 이러한 것들은 대부분 크게 시작되기보다는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이 된다. 작은 깃털쯤이야 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작게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것의 반복은 결국 우리의 인생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큰일에서만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작고 보잘 것이 없는 깃털 같은 일에서부터 큰일까지 그 무엇 하나 소홀함이 없을 때 우리 인생의 성공은 보장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비록 작지만 후회 없도록, 지금은 고통이 되겠지만 추후의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이다. 검찰의 인사에는 신경을 쓸 수도 없는 필부이지만, 어리석은 종달새의 교훈이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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