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아이는 독창성을 가지고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
그러나 성장하며 지식을 쌓고 난 뒤에는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게 눈길을 돌린다.
그리고 독창적인 미래를 창조하기보다 단순하게 현실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 미래를 추구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이는 괴테가 남긴 말이다.
얼마 전 서울시장의 극단적인 선택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조문을 하고 나오는 한 정치인의 ‘버럭’에 또다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후에 대하여 질문하는 언론에 대하여 화를 감추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이게 예의냐고’하면서 화를 냈다.
어떻게 보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평소 대화하는 그의 습관을 연상하면 그렇게 언성을 높이면서 말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귀찮고 성가신 일을 굳이 선택해서 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가장 먼 길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그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된다는 진리를 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주위로 과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당장의 ‘버럭’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 든다.
혼자서 자동차를 운전할 때 전방만을 응시하고 속도를 올리다가는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은 자신의 발밑에 있는 악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결국 쇠에서 생긴 녹이 쇠를 녹이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많이 얻고, 많이 알게 되면 자칫 흥미를 잃게 되고 호기심도 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미 많이 가지고 있고,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독창성과 창조력을 갉아먹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늘 부족하다는 생각,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지적 겸손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