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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파도가 유능한 뱃사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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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거친 파도가 유능한 뱃사람을 만든다

돛에 의지했던 범선(帆船) 시절, 뱃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한 건 무풍지대였다.

맞바람이라도 불면 역풍을 활용해 나아갈 수 있지만 바람이 안 불면 오도 가지도 못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적도 부근이나 북위·남위 25~35도는 ‘죽음의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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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현 작가

 

이곳에 갇히면 소설과 영화에 나오듯 선원들이 다 죽고 배는 유령선이 된다.

동력으로 항해하는 기선(汽船) 시대에는 무풍 대신 폭풍과 파도가 가장 큰 적이 됐다.

세계기상기구(WMO)에 기록된 파도의 최고 높이는 29.1m로, 아파트 10층 규모였다.

영국 해양조사선이 2000년 2월 8일 밤 스코틀랜드 서쪽 250㎞ 해상에서 관측했다.

파도는 해수면의 강한 바람에서 생긴다. 

그래서 풍파(風波)라고 한다.

파도의 가장 높은 곳은 ‘마루’, 가장 낮은 곳은 ‘골’, 마루와 골 사이의 수직 높이는 ‘파고(波高)’다.

‘파장(波長)’은 앞 파도 마루와 뒤 파도 마루 사이, 골과 골 사이의 수평 거리를 뜻한다.

뱃사람들은 파고와 파장을 눈으로 재면서 파도가 얼마나 세게 밀려올지 판단한다.

여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배가 부서지고 목숨을 잃는다.

서양인들이 “전쟁에 나가게 되면 한 번 기도하고, 바다에 가게 되면 두 번 기도하라.”고 했듯이 바다는 전쟁터보다 더 위험했다. 

거친 바다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다른 능력과 지혜를 겸비해야 했다.

이처럼 바다는 생존과 도전의 무대다.

북대서양과 북해는 유난히 거칠어서 유럽인에게는 한때 ‘세계의 끝’이었다.

하지만 아일랜드인은 9세기에 이미 아이슬란드를 발견했고, 바이킹은 나침반도 없이 그린란드까지 누볐다.

유럽 변방의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스페인은 바다를 정복한 덕분에 세계사의 주역이 됐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영국은 산업혁명과 민주주의 종주국이 됐다.

막대한 금과 향신료가 유입되지 않았다면 유럽의 경제 성장과 벨 에포크 같은 문화 전성기도 늦어지거나 나타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먼 해양으로 나가지 않았다.

유럽인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돛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멀고 험한 대양을 탐험할 강력한 동기가 없었다.

결국 외부 힘에 맥없이 무너지면서 도전과 응전의 역사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드넓은 바다는 모험정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태풍이 올 때 선원들은 바다가 아니라 선장을 본다. 

그만큼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바다와 바람, 선장의 의미를 생각하며 미국 작가 윌리엄 아서 워드의 명언을 함께 되새겨본다.

“비관주의자는 바람이 부는 것을 불평한다. 낙관주의자는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를 기대한다. 현실주의자는 바람에 따라 돛의 방향을 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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