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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칠화(同被七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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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동피칠화(同被七禍)

빈곤이나 질병, 재해와 같은 고통은 오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여러 사회현상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사회문제들 역시 사회적 동물이기에 공동체를 형성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역사 속에 내재해 왔다.

차승현3.jpg
차승현 작가

 

그렇게 보면 인류의 역사는 어리한 문제의 위협으로부터 생존을 보존하기 위해 도움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투쟁해온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공동체를 형성하면서부터 시작된 전통적인 사회제도 속에는 이미 서로 도와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생을 살다보면 행복했던 시간보다는 힘들고 어려웠던 불행의 시간이 더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세상을 고해, 즉 고통의 바다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행복과 불행은 자신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지거나 피해갈 수 없다.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과 같이 행복과 불행의 근원을 하늘의 소관으로 보기도 한다.

동피칠화(同被七禍)의 개념은 이웃의 고통이 곧 내 고통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웃이 일곱 가지의 불행을 당하면 자신의 불행으로 생각하고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불이 나거나 물난리를 당했을 때, 도둑을 맞았을 때, 병을 앓을 때, 초상을 당했을 때, 졸지에 고아가 되거나 과부가 되었을 때, 억울하게 무고를 당했을 때, 가난으로 몸을 못 가리고 끼니를 거를 때는 식구처럼 돕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웃을 매우 소중이 여겼다고 한다.

속담에 ‘집값은 백 냥이요, 이웃 값은 천 냥’이라는 말이 있듯이 집을 사는 것은 이웃을 사는 것이라고 이웃을 소중히 여겼다.

그 이웃들이 겪는 고통이 지금은 이웃의 고통일 수 있으나, 언젠가는 나의 고통이 될 수가 있다.

이웃의 불행을 도움으로써 자신들의 불행을 대비했던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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